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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요유(逍遙遊)-붕새
    책/고전 2016. 11. 24. 01:57

    북쪽에 깊은 바다에는 '곤(작은 물고기)'라는 물고기 한 마리가 살고 있었는데, 그 크기가 수백 킬로미터나 되었다. 어느 날 그 물고기가 변해서 새가 되었는데, 이름을 '붕'이라고 하였다. 그 등 길이가 몇백 킬로미터인지 알 수가 없었다. 한번 기운을 모아 날아오르면, 날개는 하늘에 드리운 구름과 같았다. 이 새는 바다기운으로 물결이 흉흉해지면 남쪽 깊은바다로 가는데, 그 바다를 예로부터 천지라고 하였다.

     

    '제해'라는 책에도 이 새에 대한 기록이 있다. '붕이 남쪽 깊은 바다로 갈 때, 파도가 일어 삼천 리까지 퍼진다. 그리고 붕은 회오리바람을 일으켜 그것을 타고 여섯 달 동안 4만 킬로미터를 날고 내려와 쉰다.'

     

    저 아래 땅위에서는는 아지랑이가 피어 오르고, 티끌이 날고, 생물들이 서로 숨을 불어넣어 준다. 하늘은 푸른데, 그것이 하늘의 본래 색깔일까? 끝없이 멀기 때문에 푸르게 보이는 것은 아닐까? 붕새가 높이 떠서 내려다 보니, 땅은 그저 까마득하고 푸르게 보일 뿐이었다.

     

    고인 물이 깊지 않으면 큰 배를 띄울 힘이 없다. 물 한잔을 방바닥 패인 곳에 부으면 그 위에 작은 검불은 띄울 수 있지만, 잔을 얹으면 바닥에 닿아 버리고 만다. 물이 얕은 데 비해 배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바람이 충분하지 못하면, 큰 날개를 띄울 힘이 없다. 그래서 구만리 창공에 오른 붕새는 큰 바람을 타야 푸른 하늘을 등에 지고 거침없이 남쪽으로 날아간다.

     

    매미와 비둘기는 그것을 보고 웃으면서 "우리는 한껏 날아 봐여 겨우 느릅나무나 다목나무에 닿을 뿐이고, 어떤 떄는 거기에도 못 미쳐 땅에 내려앉는데, 구만 리를 날아 남쪽으로 간다니."라고 말한다.

    가까운 숲으로 놀러 가는 사람은 세 끼만 챙겨 가도 돌아올 때까지 배고픈 줄 모르지만, 수십 키로미터를 가려면 하룻밤 지낼 양식을 준비해야 하고, 수백 키로미터를 가려면 세 달치 양식을 준비해야 한다. 매미나 비둘기같은 미물이 이를 어떻게 알까? 작은 앎으로는 큰 앎을 헤아릴 수 없고, 짧은 삶으로는 긴 삶을 헤아릴 수 없다.

    이런 사실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아침에 잠깐 났다가 시드는 버섯은 저녁과 새벽을 알 수 없다. 여름 한철 사는 메뚜기는 봄과 가을을 알 수 없다. 이것이 '짧은 삶'이다.

    반면, 초나라 남쪽에는 명령이라는 신령한 거북이 살았는데, 이 거북에게는 봄가을이 오백 년씩 있었다. 그보다 더 오랜 옛날에는 춘이라는 큰 나무가 있었는데, 이 나무에게는 봄가을이 각각 팔천년씩이었다. 이런 것이 '긴 삶'이다. 

     

    '상나라 시조 탕왕이 신하 하극에게 물음'이라는 책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있었다. '...붕이라는 새도 한 마리 있었는데 그 등이 태산 같고, 날개는 하늘에 드리운 구름 같았습니다. 회오리바람을 타고 구름 위로 솟아올라, 푸른 하늘을 등에 지고 구만 리를 날아 남쪽 깊은 바다로 갔습니다. 메추라기가 이것을 보고 비웃으면서 말했습니다. '저 새는 저렇게 날아서 어디로 간단 말인가? 나는 한껏 뛰어올라도 몇 길을 못 올랐다가 내려앉아서 기껏해야 이 숲에서 저 덤불로 날아가는데, 도대체 저 붕새는 저렇게 날아서 어디로 가는가?' 큼과 작음의 차이가 이렇습니다.'

     

    그러므로 그 아는 것이 벼슬자리 하나 채울 만한 사람, 그 행위가 마을 하나를 돌볼 만한 사람, 그 덕이 임금 하나를 섬길 만한 사람, 그 재능이 한 나라를 맡을 만한 사람. 이런 사람들은 그 기량이 메추라기만한 사람들이다.

    그래서 송영자는 그런 사람들을 비웃었으며, 그는 온 세상이 자신을 칭찬해도 우쭐하지 않고, 비난해도 기죽지 않았다. 내실과 외식을 분명히 구별하고, 영광과 치욕의 경계를 확실히 알았기 때문이다. 세상일을 서두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도 아직 이르지 못한 경지가 있었다.

    열자는 바람을 타고 올라가 마음대로 노닐다 열 닷새가 지나서야 돌아왔다. 세상의 행복에 연연하지 않고 초연히 노닐었다. 그러나 아직 아무것도 의지하지 않을 만큼 초연하지는 못했다.

    어떤 사람이 하늘과 땅의 바름을 타고 났고, 기를 변화시켜서 끝이 없는 경지에서 노닐 수 있다면, 그 사람이 무엇을 더 바랄까?

    그러므로, 덕이 지극한 사람은 자신에 집착하지 않고, 신과 같은 사람은 공적에 무관하고, 성인은 명예를 탐내지 않는다고 한다.

     

    『장자』, 오강남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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