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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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은 바람에 흔들리며 핀다책/수필 2017. 3. 31. 00:06
마음에 담아두지 마라 흐르는 것은 흘러 가게 놔 둬라 바람도 담아두면 나를 흔들 때가 있고 햇살도 담아두면 마음을 새까맣게 태울 때가 있다 아무리 영롱한 이슬도 마음에 담으면 눈물이 되고 아무리 이쁜 사랑도 지나가고 나면 상처가 되니 그냥 흘러가게 놔 둬라 마음에 가두지 마라 출렁이는 것은 반짝이면서 흐르게 놔 둬라 물도 가두면 넘칠 때가 있고 빗물도 가두면 소리내어 넘칠 때가 있다 아무리 즐거운 노래도 혼자서 부르면 눈물이 되고 아무리 향기로운 꽃밭도 시들고 나면 아픔이 되니 출렁이면서 피게 놔 둬라 꽃은 바람에 흔들리면서 핀다 김정원, 꽃은 바람에 흔들리며 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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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태주 시인 어머니의 편지책/수필 2017. 3. 30. 22:34
나는 옛날 사람이라서 주어진 대로 살았다. 마음대로 라는게 애당초 없는 줄 알고 살았다. 너희를 낳을 때는 힘들었지만, 들에 나가 돌밭을 고를 때는 고단 했지만 밭이랑에서 당근이며 무며 감자알이 통통하게 몰려나올 때 내가 조물주인 것처럼 좋았다. 깨꽃은 얼마나 예쁘더냐. 양파꽃은 얼마나 환하더냐. 나는 도라지 씨를 일부러 넘치게 뿌렸다. 그 자태 고운 도라지꽃들이 무리지어 넘실거릴 때 내게는 그것이 극락이었다. 나는 뿌리고 기르고 거두었으니 이것으로 족하다. 나는 뜻이 없다. 그런 걸 내세울 지혜가 있을 리 없다. 너 어렸을 적, 네가 나에게 맺힌 듯이 물었었다. 이장 집 잔치마당에서 일 돕던 다른 여편네들은 제 새끼들 불러 전 나브랭이며 유밀과 부스러기를 주섬주섬 챙겨 먹일 때 엄마는 왜 못 본척 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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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은둔을 꿈꾸는 친구에게책/수필 2016. 12. 11. 03:23
스무살 무렵엔 누구나 은둔을 꿈꾸지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어촌에 작은 낚시집이나 하나 열어서 살아가는 꿈 또는 땡중이나 수도승이 되어 산사의 목어소리를 들으며 살아가는 꿈 백두대간 봉우리 하나쯤 잡아서 산장지기를 하며 늙어가는 꿈 그때는 그게 꿈이 아니라고 생각하지 가끔 세상은 나를 성가시게 하고 인연이 없는 여자들은 매몰찬 상처만 남기고 떠나가지. 스무살 무렵에는 유난히 그런 일이 많은 법이지 가끔, 자살을 꿈꾸기도 했을 것이네 마음 주지 않는 여자나 허망하게 무너진 추운 나라 때문에 음습한 거리를 청바지에 손을 꽂은 채 헤매기도 했을 것이네 그런 때면 하늘은 너무도 청명하여 새들조차 날아다니지 않지 스무살 무렵에는 보고 싶은 사람도 많았네 무인도에 함께 가자던 초등 학교 동창생들이 그립고 공주같은 옷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