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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잘자 푼푼 7권 - 푼푼 외삼촌의 인생관
    기타/스크랩 2017. 10. 25. 00:48

     [푼푼이 아버지와 살기 않기로 결심한 후, 삼촌의 대사 겸 독백]


    "푼푼...이게 도대체 몇 년 만이지? 이렇게 푼푼과 단 둘이서 산책을 해 보는 게.

    여태까지 계속 생각해 온 건데 말야... 푼푼, 너와 난 굉장히 닮은 점이 많아. 네가 신경질적인 것도 나는 다 이해가 간단다. 사람들은 다 자기 자신밖에 모르지. 누나도, 매형도, 심지어 나조차도 말야.

    매형은...그러니까 네 아빠는... 정직하고 정 많은 사람이니 너무 싫어하지는 말아줬으면 하는구나. ...물론, 그렇다고 아빠를 동정하라는 건 아냐. 네 아빠도 그런걸 원치는 않을 거다.


    어차피 인생은 결국 자업자득인 거니까. 우리가 선택한 길 위에서 사는 거지. 그렇지 않니?

    푼푼...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한 게 뭐라고 생각해? 돈, 꿈 명예... 물론 이러한 것들도 정말 중요한 것들이지.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네가 한 행동에 대한 '책임'이야.


    푼푼 네가 혼자서 살겠다고 말할 때, 사실 굉장히 의외였어. 내 똘똘이가 쪼그라드는 기분이었다니까.

    하지만 그것이 네가 정한 것이라면, 난 거기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겠어. 만약에 네가 연쇄살인범이 되거나 감옥에 들어가더라도, 그건 더 이상 내가 참견할 바가 아니지. 하지만, 만약에라도 너에게 닥친 일에 대해 남 탓을 하거나 핑계를 댄다면, 카타나를 들고 네 앞에 찾아갈테니까 그렇게 알아!!

    알겠어? 인생이란 건 네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자유를 누릴 수 있어! 하지만 자유에는 반드시 책임이 따른단다. 이걸 절대로 잊어서는 안 돼.


    ...(중략)...


    푼푼... 생각하는거야. 그리고 깨닫는거야! 그렇게 너의 길을 선택해야한다!!

    만약에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다 하더라도, 이해하려 기를 쓰며 앞으로 나아가려 한다면, 넌 너 자신으로서 살아갈 수 있단다.

    이런 시시한 날에도... 이런 보잘것 없는 곳에서도... 바꿀 수 있는 건, 오직 너 자신뿐이야!!


    그러니까 푼푼... 네가 너 스스로 남아있을 수만 있다면... 세상은 네 거야."



    시험 전날 읽는 만화는 역시나 재미있었다. 만화를 읽던 도중, 거의 유일하게 정상적인 인물로 나오는 주인공이 삼촌이 주인공에게 위의 대사를 던진다. 



    담담하면서 힘이 되는 삼촌의 대사와는 달리, 만화 자체는 끝도 없이 우울했다. 만화 속에는 소설 '인간실격'의 상위호환이라고 할 만큼, 상처받은 혹은 상처로 미쳐버린 사람들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래서 웬만한 멘탈이 아니고서야 이 만화를 보고 나면 후유증이 제법 생길 것이다. 

    주인공은 자기 내면의 어두움에 갖혀 있고, 이를 '가식적인 활달함 또는 웃음'으로 꽁꽁 감추고 있다는 점에서는 다자이 오사무의 소설 '인간실격'의 주인공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소설과는 달리 만화에는 푼푼 외에도 '어머니에게 학대받는 딸', '돌아가신 어머니의 환상을 보는 소년', '일찍부터 집을 나와 막노동을 전전하는 소년' 등 그늘진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등장인물로 나온다는 점에서 다르다. 그리고 그 사람들 사이에서의 사건들, 대화들을 통해 작가가 생각하는 '내면의 어둠'의 실체가 어느 정도 드러난다는 점도 다르다.


    만화 속에서 주인공과 등장인물은 힘들 때마다 마음 속 저마다의 '신'과 이야기하곤 한다. 일반적인 소설이나 만화에서 나오는 신과는 달리 '잘자, 푼푼'에서는 '신'을 사람마다 갖고 있는 내면의 어두움으로 설명하는 것 같다. 이는 이 만화의 여주인공이라고도 할 수 있는 아이코의 대사에서 드러난다.


    "대체 언제쯤이었을까... 신과 이야기하는 것은 다름아닌 나 자신과 이야기하는 것임을 마침내 깨달았던 때가..."


    그리고 인류를 구원하겠다는 사명을 띤 사이비종교의 교주 페가수스는 그 '신'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한다.


    "딱하도다. 어둠의 근원의 또 다른 희생자로구나... 그대와 이 몸이 말하고 있는 와중에서도. 소리없이 찾아와 틈을 비집고 방 안으로 들어올걸세.

    점점 그대를 광기의 심연으로 끌어당길 걸세!"


    만화가 진행될수록, 만화 속의 '신'은 고난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절망 속으로, 더 어두운 곳으로 이끈다. 

    그리고 만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페가수스는 우주의 선율을 연주함으로써 어둠의 근원을 물리치고, 종말을 막는다.

    푼푼은 자신의 눈을 칼로 찌름으로써 '신'을 죽인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 걸어나오면서 자신의 마음에 솔직해지며 만화는 끝난다. 자신의 초라하고 나약한 모습, 욕망들, 잘못된 선택들을 왜곡하지 않고 내버려두면서. 

    푼푼은 '신'을 죽였다. 하지만 전쟁에 이기더라도 죽거나 죽인 사람이 많으면 상례로 처리한다는 말처럼, 만화의 마지막 부분은 많이 서글프고 씁쓸하다. 신은 죽었고, 푼푼은 내면의 어두움에서 벗어나게 되었지만 잃어버린 눈과 죽은 아이코는 다시 돌아오지 않기 때문이다. 

    뚜렷한 해피엔딩이나 배드엔딩과는 다른 모호한 결말이었만, 그렇기 때문에 더 현실적으로 느껴졌고 여운이 길게 남았던 만화였다.


    어떤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고 앞으로 나아가려 한다면 자기 자신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푼푼 외삼촌의 말이, 내면의 어둠을 이겨내는 유일한 방법이자 작가가 만화를 통해 이야기하려던 주제와도 연관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가장 기억에 남는 대사였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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